19세기 후반 프랑스 신문 시장은 레드오션(Red Ocean, 붉은 피를 흘려야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한 시장)의 전형이었다. 1892년 프랑스 전역에서 쏟아져나온 정기간행물 수는 약 6천종. 1899년에 이르러서는 파리에서만 60종의 신문이 발행됐다.

2007년 현재 서울에서 발행되는 일간지가 48종(문화관광부 '신문현황', 인터넷신문 제외), 인터넷을 포함한 전국판 정기간행물이 8천868개라는 점을 고려하면 약 130년 전 프랑스의 신문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 세기를 뛰어넘는 시차. 그러나 130년 전 파리에서나 2009년 서울에서나 변치 않는 원칙이 하나 있다. 바로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이다.

60종의 일간지가 각축을 벌이던 1900년 파리에서 시장을 주도한 건 단 4개의 신문사였다. '르 프티 주르날', '르 프티 파리지엥', '르 주르날', '르 마탱' 4개사가 신문시장의 75%를 틀어쥐었다.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르 푸티 주르날'의 사례를 보자.

'저렴한 신문의 아버지'로 불리는 창립자 무아즈 폴리도르 미요는 유한계급의 상징이었던 신문의 폐쇄성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그는 먼저 신문값을 내렸다. 새로 글을 깨우친 브루주아들을 독자로 흡수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주요 기차역 가판대나 판매원을 통해 신문을 팔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정기구독하지 않고도 신문을 사 볼 수 있게 됐다.

이 방식으로 미요는 파리 뿐 아니라 파리에 드나드는 근교 시민들까지 독자층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거대 신문사들이 정기구독을 통해 1만명 미만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던 시절, 그는 유통 혁명으로 창립 20여년 만에 발행부수를 100만부까지 늘렸다.

100년도 더 된 성공담이 아니더라도 닫힌 시장에서 열린 문을 찾아낸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당장 한국의 대표 수출기업인 현대자동차는 세계 경기 둔화 속에서도 '실업 마케팅'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엔 고유가, 하반기엔 미국발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현대차는 최대 격전지인 미국 시장에서 실직 우려를 상품으로 가공해 되팔았다. 직장에서 내쫓길까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차를 산 뒤 직장을 잃으면 타던 차를 돌려받고 할부채무를 면제해주는 '현대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이 등장한 배경이다.

주로 큰 차를 가지고 있던 미국 소비자들은 알뜰하게 쓸 수 있는 소형차를 마련하면서도 최악의 경우 할부금 걱정까지 덜 수 있는 이 제도에 열광했다. 현대차는 새 차가 필요하지만 '만약에 당할지도 모르는 해고' 즉, 현존하지 않는 위험을 나누겠다는 발상으로 닫힌 지갑을 열었다.

현대차는 이 파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올 들어 수요가 30% 이상 급감한 미국 시장에서 1분기에만 전년대비 0.5% 증가한 판매 실적을 올렸다. 3월 판매 실적은 2월보다 33% 급증했다. 같은 기간 일본 기업 도요타와 혼다의 판매 실적은 각각 39%, 36% 줄었다. 미국의 GM과 포드, 크라이슬러 등은 40% 이상 판매 대수가 급감했다.

결국 GM과 포드가 뒤늦게 현대차와 유사한 할부금 대납 프로그램을 마련했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현대차의 가능성에 한 표를 던지는 분위기다. 현지 기업들은 미 정부의 자금 수혈이 없이는 독자생존이 어려운 실정이지만, 현대차의 재무구조는 상대적으로 탄탄하다. 세계 유수 자동차 기업들의 도산 우려에 현대차 주가는 연일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소비자들이 실직해 현대차가 중고차를 떠안게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역설적인 얘기지만 정작 해고 위험에 놓인 사람이 새 차를 살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실직 마케팅에 안심하며 새 차를 사는 이들은 아마도 소비심리가 얼어붙었지만, 당장 한계 계층까지 내몰릴 위험은 적은 사람들일 것이라 예측해 볼 수 있다. 그러니 실직 때문에 타던 차를 반납하는 소비자 수는, 현대차가 실업 마케팅으로 얻는 이익에 비해 극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언뜻보면 밑지고 파는 것 같아도 분명히 남는 장사다. 그러면서도 고객과 위험을 나눈다는 생색까지 낼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경제 위기로 도산 위기까지 갔던 월마트를 구해 낸 리 스콧CEO는 그랬다. "우리 일만 잘 한다고 해서 세상이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가. 그렇다면 정공법 대신 '플랜B(차선책)'로 응수해야 할 때다. 조금은 엉뚱하게, 보다 참신하게 전진하라. 난폭한 파도가 이는 빨간 바다에서 똑똑하게 살아남길 원한다면.

* 프랑스 신문 시장의 역사는 바네사 R. 슈와르츠의 '구경꾼의 탄생(원제 Spectacular Realities)'에서 참고함.